수출 41.5%가 반도체인데…이창용 전 한은총재가 "축복 아닐 수도"라 말한 이유

이창용 전 한은총재 단독 인터뷰
"반도체 호황, 국가 경영의 만능열쇠 아니다"
지난달 전체 수출의 41.5%가 반도체였던 가운데, 지난 4월 퇴임한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가 퇴임 후 첫 인터뷰에서 반도체 호황이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착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의 800조 원대 역대 최대 예산 편성 논의와 맞물려 나온 발언이라 무게가 실린다.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장기 저성장 트렌드를 최근의 반도체 호황 지속만으로 역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퍼사이클이 이어지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늘어난 세수가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네덜란드병' 경계론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 호황이 인력과 투자를 빨아들이며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네덜란드병' 가능성을 경계했다. 이 전 총재는 당장 환율 경로로 다른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면서도, 핀란드의 노키아·대만의 TSMC처럼 소수 기업과 특정 산업에 국가 경제의 명운이 과도하게 의존하는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 AI 정책: AI 산업 발전과 반도체 산업 발전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크며, 자율주행차 등 신기술 시험 규제를 풀고 교육·노동시장도 함께 바꿔야 한다고 지적
- 정년 연장: 임금 조정 없이 정년만 늘리면 청년층이 충격을 떠안는다며, 정년 연장과 고령 노동자 임금 조정·유연 근무를 함께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
- 부동산: 가계부채 총량관리·공급 확대·세제 개편 중 하나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며 지방 거점 도시 2~3곳 집중 육성을 대안으로 제시
- 세제: 보유세는 높이고 양도세는 낮춰 주택 보유자가 매도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
부동산 문제에 대해 그는 계속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입된다면 공급을 확대해도 주택가격 상승을 막기 어렵다며, 서울과 경쟁할 수 있는 지방 거점 도시를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봤다. 세제 방향에 대해서는 "이미 발생한 집값 상승과 자산이익은 일종의 매몰비용으로 보고, 앞으로 어떤 제도가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를 봐야 한다"며 과거에 누가 얼마를 벌었는지를 계속 따지다 보면 필요한 제도 개편을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생산적·포용금융에 대해서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낮은 이자율로 더 많은 대출을 해주는 방식이 취약계층을 돕는 좋은 방법인지는 따져봐야 하며 금융을 준재정적 수단으로 쓸 경우 과거 금융위기가 반복되지 않을 보장이 있는지도 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재임 중 가장 억울했던 일로 2025년 말 환율 급등 당시 '서학개미 탓을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일을 꼽았다. 거주자의 해외주식 투자 확대가 환율 상승의 주요 요인이라고 데이터를 근거로 설명했지만, 정책 실패의 책임을 개인 투자자에게 돌린다는 비판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의 '큰손'이 된 만큼 환헤지 확대와 해외투자 속도 조절, 달러 조달 다원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총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의 화두는 결국 구조개혁이다. 그는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관련 연구와 자문을 이어가는 한편, 이달부터 미국 워싱턴의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비상근 수석연구원으로 국제 문제도 들여다보고 있다. 그는 "이제는 더 긴 시계에서 문제를 분석할 시간이 생겼다"며 저출산, 청년고용, 노인빈곤 세 가지 과제에 집중해 연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필요하면서도 정치적 비용이 큰 문제라면 노동시장 개혁을 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Follow-up
한 발 더 들어가는 질문
1'네덜란드병'이 정확히 무슨 뜻이고 한국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나?
네덜란드병은 1950~60년대 네덜란드가 북해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자 통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오히려 제조업 등 다른 산업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던 현상에서 유래한 용어입니다. 특정 산업의 호황이 통화 강세를 유발해 역설적으로 나머지 산업을 위축시키는 구조를 가리킵니다.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반도체 호황이 인력과 투자를 흡수하며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을 이 개념에 빗대 경계했지만, 이창용 전 총재는 당장 환율 경로로 이런 현상이 나타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소수 기업·산업에 대한 경제 의존도 자체는 별도로 관리해야 할 리스크라고 봤습니다.
2반도체 수출 비중 41.5%는 어느 정도로 높은 수준인가?
지난달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한 비중이 41.5%였다는 것은, 한국 수출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단일 산업군에 집중돼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전 총재는 이런 쏠림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핀란드의 노키아나 대만의 TSMC 사례처럼 특정 기업·산업에 국가 경제 전체의 명운이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핵심 과제라고 짚었습니다. 반도체 업황이 꺾일 경우 수출과 세수에 미치는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기도 해, 업황 사이클을 지켜보는 투자자라면 이 비중의 변화 추이를 함께 참고할 만합니다.
3정년 연장과 임금 조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이 전 총재는 임금 체계를 그대로 둔 채 정년만 연장하면,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커 그 부담이 청년층 고용에 집중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대안으로 정년은 연장하되 일정 연령 이후 임금을 조정하는 임금피크제 같은 제도를 병행하고, 파트타임 등 다양한 근무 형태를 허용해 고령 인력의 노동시장 참여 방식을 유연화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AI 확산으로 청년 고용 여건이 어려워지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그는 이 사안을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4'서학개미 탓' 논란은 정확히 어떤 사건이었나?
2025년 말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을 당시, 이창용 전 총재가 거주자의 해외주식 투자(이른바 '서학개미') 확대를 환율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설명하면서 논란이 됐습니다. 그는 데이터에 근거해 설명했다고 밝혔지만, 통화 당국의 정책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개인 투자자에게 돌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이 전 총재는 이번 인터뷰에서 당시 "정말 말실수를 했는지 자괴감도 작지 않았다"고 회고하면서도, 지금은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확대가 환율 상승의 주요인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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